학을 생각하는 닭이 되자.(“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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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 10점
마르탱 파즈 지음, 용경식 옮김/작가정신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라는 이 책은 제목만 보고 유머러스한 내용이 펼쳐질 것 같아서 고르게 되었다. 내용을 축약하는 게 제목이기에 제목에 대한 궁금증부터 생겼다. “나는 바보가 되었다”라고 종결형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라는 물음표가 붙지 않는 의문형으로 끝을 맺는, 꽤나 특이한 제목이었기에 책을 읽어가면서 더욱더 내용으로 제목을 풀어보아야겠다는 고민은 더해 간 듯하다. 일단 내용을 좀 살펴보기로 하자.
바보는 “바라보아도 보고 싶은 사람”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꽤 낭만적으로 들리는 말이지만, 그 말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자.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꽤 유머러스한 관경이 펼쳐진다. 앙투안의 사고는 그와 비슷하다.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앙투안은 조금 어렵게 접근한다. 자연스러운 걸음이 아니라, 한 걸음 마다 보폭과 속도를 생각하고 조절하며 걷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셈이다. 하지만, 그가 무턱대고 그런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사건, 현상들의 원인에 대해 귀인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그런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고로 인해 자신이 꽤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 “지성은 곧 질병”이라며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책보다는 TV를,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알코올중독자가 되기 위해 알코올에 대한 서적을 읽고 술을 마셔 보기도 하고, 자살을 하기 위해 자살강의를 찾아가서 듣기도 한다. 그러나 삶을 행복하게 해주리라는 다분히 “앙투안스러운” 노력은 그에게 전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지성을 포기하고 바보가 되는 것”.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백만장자가 되어 그가 싫어했던 “빨간색 포르셰”를 사거나 비효율적으로 크게 지어진 집을 사는 등, 이른바 “털갈이”를 한다.
그러나 앙투안이 더 이상 앙투안이 아니었다. 부가 가져온 잠깐의 변화였을 뿐이었다. 마치 매미가 첫 날갯짓 뒤로 남겨진 굼벵이껍데기처럼, 그는 하나의 허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먹었던 뽕잎을 게워내는 송충이처럼 자신의 부를 버리고, 다니 브리앙의 유령과,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절친한 친구들에 의해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과거 속의 자신을 되찾으며 책은 끝난다.
유령놀이를 하며 과거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앙투안을 보며 물음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건 스스로 바보가 되기로 결심을 했기에 작가는 제목에 물음표를 달지 않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들에 몰려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가 전설의 비급을 얻는, 무협지의 황당무계한 우연으로 이루어진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삶의 과정들을 앙투안 자신이 점검해 나가며 철저히 바보가 되어보기로 한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의문형의 제목은 아마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였으리라...

책을 덮고 난 후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흰 종이가 너무 커서 자기 이름을 못 쓰겠다며 우는 정신지체 아이, 4+1은 풀면서도 1+4는 어려워하는 학습장애 아이, 다른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는 자폐 아이... 앙투안의 특이한 사고방식과 그런 장애아동이 가지고 있을 사고방식은 습자지에 그려서 겹쳐보면 많은 부분 비슷할 것 같았다. 결국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줬던 친구들 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앙투안처럼, 특이한 사고의 차이 때문에 사람들의 가지는 편견의 벽에 부딪혀서 결국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 스스로 갇혀야 하는 장애인들의 현실이 그대로 머리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런 장애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처음 책을 빌릴 때는 잠깐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 유머러스한 책을 골랐는데 그런 현실이 생각나면서 이 책은 나에게 더 큰 고민꺼리를 던져준 셈이다.


군계일학이라는 말 속에서 학을 생각해주지 않는 닭이라면 결국 이기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닭이 없다면 학은 무의미하다. 닭은 학을, 학은 닭을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앙투안이, 현실 속에서는 장애인들이 사회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다. 이제 그만 그들을 통해 그저 “감동”만을 얻는 자세를 버리고 내 팔을 벌려 “동감”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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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6 00:04 2007/10/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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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날 2007/10/08 19:36

    라온수카이님.. 책을 보내주신 학교 주소로 발송했는데, '졸업'하셨다며 되돌아 왔습니다. 으흑.. '윤규식'님이 라온수카이님의 성함이 맞다고 기억하고 있는데요.
    다시 한 번 주소를 보내주시면 '오렌지 레슨' 책을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메일 주소 아시죠? :-)

    • 라온수카이 2007/10/09 16:37

      이런 어이없는 일이...;;; 본의 아니게 꼬날님을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 여름에 졸업한 건 맞지만 학교내에 있는 고시원에 살고 있어서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 왜 그 택배아저씨는 연락도 없이 왔다 간 것일까요?ㅡ.ㅜ

      어디 택배인지 알려주시면 혼쭐을 내줘야겠습니다. '0'/

    • 꼬날 2007/10/09 17:01

      ㅋ.. 다시 보내드릴게요 라온수카이님.
      이번 주 안에 발송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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